Jungle Rose by Lee Kyung Hwa
INTERVIEW
디지털이 상용화되지 않은 시절부터 천 위에 붓으로 한 땀 한 땀 다채로운 무늬를 그려내던 감각.
30년간 더욱 정교해진 예술적 붓터치는 오늘날 컴퓨터 태블릿과 포토샵 캔버스 위에서도 온전히 빛난다.
여성에게 많은 것을 강요한 시대를 거쳐, 동양인으로서 많은 제약과 디자인 기술의 격차를 넘어 매일매일
자신만의 찬란한 디자인을 그려내고 있는 텍스타일 디자이너, 이경화를 만났다.
Lee Kyung Hwa Textile Design의 이경화 대표 디자이너.
30년이 넘는 오랜 시간동안 매년 패션 트렌드를 놓치지 않고 예리한 감각으로 패턴을 그려오다, 최근 디지털 작업으로도 스펙트럼을 넓힌 ‘패턴 장인’이다. 그렇기에 오랜 연륜이 쌓인 이경화 디자이너의 패턴들은 마치 회화 작품처럼 견고하고 우아하며 매혹적이다.
PART 1. With MUTEMUSE
- Q. 직물이 아닌 스트랩에 작업해본 소감은?
- A. 직물에는 패턴이 넓고 규칙적으로 배치되기 때문에 리핏(repeat)작업을 해야 하는데, 이번 스트랩의 경우에는 제한된 면 위에 어울리게끔 불규칙적으로 배치하는 올오버(all-over placement)식으로 작업해야 했다.
- Q. 창작자로서 보는 <정글로즈> 스트랩의 특징은 무엇인가?
- A. 굉장히 클래식한 모티브를 고전적인 방법으로 표현했다. 장미와 표범, 짙은 녹색의 보태니컬 모티브는 어떻게 보면 전혀 새로울 게 없는데, 그래서 더욱 빈티지한 매력이 있다.
- Q. 그런데, 뭔가 오묘하고 낯선 분위기가 있다.
- A. 맞다. <Jungle Rose>의 가장 재미있는 점은, 동양적인 모티브가 전혀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오리엔탈한 분위기가 난다는 것이다.
- Q. 오리엔탈한 느낌?
- A. 그림체 때문이다. 명암이 정교하고 윤곽선이 뚜렷한데 컬러감이 찬란하니까. 가볍게 슥슥 날린 스케치가 아니라, 자칫 무거워보일 수 있는 회화적인 기법이 마치 자수 같기도 하고. 의외로 가죽이라는 묵직한 질감과 잘 어울렸다.
- Q. 뮤트뮤즈의 다른 스트랩 중에서는 어떤 것이 매력있나?
- A. <Rainy Flower>가 눈에 들어왔다. 영국 디자이너의 작품이라 그런지 유럽 특유의 서정적인 분위기가 있다.
PART 2. Past & Now
- Q. 2010년 인터뷰에서는 ‘계속 손그림으로 작업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지금은 컴퓨터로 작업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 A.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9.11테러 탓이다. 그때 전세계적으로 패션 시장이 가라앉았다. 한창 카무플라주(camouflage: 군에서 쓰는 위장도색)패턴이 유행의 정점을 찍던 시기였는데, '군대 냄새 나는' 모든 디자인이 자취를 감출 정도였다. 나까지 그 영향을 받아서 해외 일거리가 뚝 끊기고, 그때 스튜디오 규모를 확 줄였다. 직원들도 많이 내보냈다.
- Q. 보다 직접적인 계기가 있었다면?
- A. 일손이 모자라서 고생하던 어느날, 딸이 "엄마는 컴퓨터만 하면 날개를 달텐데"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날로 오기가 생겨서 시작했다. 막연하게 1주일이면 될 줄 알았는데, 오산이었다.(웃음)
- Q. 포토샵을 배우다니, 쉽지 않았을텐데.
- A. 죽고 싶었다. 나이 들어 시작하니 그만큼 힘들었다. 학원 수업도 당연히 못 따라갔다. 젊은 친구들이 1년 걸린다면 난 5년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컴퓨터를 배웠다. 태블릿도 마찬가지다. 둘째 딸이 '나도 적응 힘들었는데 엄마가 어떻게 해~'라고 지나가면서 던진 말에 발끈해서 연습했다. 태블릿과 닿는 손 피부에 물집과 굳은살이 잡힐 정도로.
- Q. 작업 방식이 바뀌고 나서 어떤 차이가 생겼나?
- A. 작업 속도가 4-5배 넘게 빨라졌다. 예전에는 틀에 천을 끼우고 스케치를 한 후 안료를 일일이 배합해 얹어야 했다. 마르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잘못 그렸을 때 수정도 어렵다. 지금은 세밀하고 정교한 모티브는 손으로 그려서 컴퓨터로 옮긴 후 컬러와 배치를 조정한다.
- Q. 혹시 예전 고객들이 손으로 그린 그림을 찾지는 않나?
- A. 내가 포토샵으로 작업한다는 걸 말해주기 전까지는 모른다. (웃음) 아무리 컴퓨터로 작업해도, 내 디자인에는 '손그림’의 느낌이 강하게 남아있다. 지금도 에이전시 통해서 브랜드들이 “혹시 파일이 있나요?”하고 물어볼 정도니까. 당연히 있죠.
- Q. 손그림을 그만두게 되어 아쉽지는 않나?
- A. 전혀. 시대와 도구는 함께 바뀌기 마련이다. 결과적으로, 컴퓨터를 배운 건 태어나서 이룬 것 중 가장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일이 되었다. 다 커서 더이상 내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자식에게 부모로서 보여줄 수 있는 건, 이제 이런 삶의 모습 아니겠나. 계속 배우고 성장하는 인간의 모습같은 거.(웃음)
- Q. 그 세대의 텍스타일 디자이너로서는 국내에선 거의 유일하지 않나.
- A. 그럴 거다. 그 시절에 시작해 지금까지 남아있는 텍스타일 전문 디자인 스튜디오는 국내에는 거의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지금은 워낙 싸고 빠르게 패턴을 보급할 수 있기도 하고...